광주에 이곳을 가보셨나요?

광주에 이런 곳이?

광주광역시의 가볼 만한 곳, 잘 알려진 곳 보다는 잘 모르는 곳을 위주로 소개했습니다.

 

풍영정 [風詠亭]

 

 강변과 어우려져 경관을 만드는 곳, 풍영정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선창산(仙滄山)과 극락강(極樂江)이 마주치는 강변의 대지 위에 있다.

 광주와 광산 일대에 있는 100여 개의 정각 중 대표적인 것이다. 풍영정은 명종 15년(1560년) 승문원(承文院) 판교를 끝으로 관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김언거(金彦据)가 지은 정자이다. 여기서 그는 72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10여년 동안을 김인후(金麟厚), 이황(李滉), 기대승(奇大升) 등 이름난 문인들과 교우하며 지냈다. 풍영정에 남아 있는 이들의 제영현판(題詠懸板)은 이때의 흔적이다. 또한, 여기에는 〈제일호산(第一湖山)〉이라는 편액(扁額)도 걸려 있는데, 이는 명필 한석봉(韓石奉)이 쓴 것이다.

 김언거는 덕망이 높아 낙향을 하자 그를 아끼던 사람들이 12채나 되는 정각을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풍영정 이외의 11채의 정각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풍영정만 소실을 면한 데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다른 정자들이 다 타버리고 풍영정이 불길에 휩싸이자 현판 글자 가운데 앞의 풍〉자가 오리로 변하여 극락강 위로 날아올랐다. 기이하게 느낀 왜장이 즉시 불을 끄도록 하자 극락강의 오리가 현판에 날아들어 다시 글씨가 또렷이 되살아났다. 현재 정각에 걸린 현판의 글자를 자세히 살펴보면 풍자와 영정의 글씨체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이 전설이 생겨난 까닭이 아닌가 여겨진다.

 

 

 

 

 

 

 

 

 

 

 

 

 

 

 

 

 

 

 

 

 

광주 구 포충사 [褒忠祠]

 

 포충사(褒忠祠)는 임진왜란 초기 호남 지방에서 의병 7천 명을 모집하여 금산성 전투 및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한 고경명 · 고종후 · 고인후 3부자와 유팽로 · 안영 등 5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액 사당이다.

 나라에서는 고경명과 함께 순절한 장남 고종후와 차남 고인후 3부자를 위해 1595년에 정문을 세웠고, 1601년(선조 34)에 임금의 명으로 사우를 건립하여 고경명 3부자와 함께 의거했다가 순절한 유팽로 · 안영 등 5인을 함께 배향했다.

 임진왜란이 지나고 사회가 어느 정도 안정된 1601년 호남의 유생들이 지역의 충절인물을 모실 사우 건립을 청원하고 1603년에 광주 제봉산 아래에 다섯 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을 건립했다. 이어 제자인 박지효(朴之孝)와 고경명의 후손들이 사액을 청하니 나라에서 ‘포충(褒忠)’이라는 액호를 내리고 예관(禮官)을 보내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만귀정

[문화재자료 5호] 서구 세하동 동하마을에 있는 정자이다. .

 

 서구 세하동 동하마을에 있는 정자이다. 효우공(孝友公) 장창우(張昌羽)가 후학을 가르치며 만년을 보내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원래의 건물은 세월이 지나면서 무너져 없어졌고, 후손들에 의한 1934년의 중건과 1945년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장창우는 이곳에 동족마을을 이루며 살아온 흥성 장씨(興城 張氏)의 낙남선조(落南先祖)인데, 그 창건 시기는 밝혀져 있지 않다. 건물은 사방 두 칸의 규모로 되어 있는데, 골기와를 얹은 팔작지붕에, 바닥에는 우물 마루를 깔았고, 동ㆍ서ㆍ남의 세 방향에 난간을 돌렸다. 만귀정은 큰 연못 가운데 세워진 수중(水中) 정자인데, 그 옆에는 습향각(襲香閣)과 묵암정사라는 이름의 또 다른 정자가 다리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늘어서 있다. 두 정자 모두 만귀정 중건 이후에 건립되었다.

 

 

 

 

 

1995년 만귀정

 

 

2004년 만귀정

 

 

2005년 만귀정

 

 

2006년 만귀정

 

 

청춘발산마을

 

 전쟁 피난민들이 모였던 전라도 광주의 대표적인 달동네, 발산마을은 70~80년대 방직공장이 인근에 생기면서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온 여공들로 한 때 활력이 넘쳤던 마을입니다.

 90년대 이후 도심 공동화 현상과 방직공장의 쇠퇴로 마을의 여공들이 떠나면서 점차 빈집들이 늘어나고, 어느새 나이든 어르신들만 남아 삶의 터전을 지켜왔습니다.

 

 

 

 

 

 

2015년 청춘발산마을

 

 

 

 

 

 

 

 

 

 

 

 

 

 

 

 

 

 

 

 

월봉서원과 빙월당

 

 월봉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고봉 기대승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호남 유생들이 1578년(선조 11)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세운 서원이다.

 월봉서원 (月峯書院)은 1578년(선조 11)에 김계휘(金繼輝)를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의 공의로 기대승(奇大升)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광산군 비아면 산월리에 망천사(望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46년(인조 24)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1654년(효종 5)에 ‘월봉(月峯)’이라고 사액되었다. 1671년에 송시열(宋時烈) 등의 건의로 인근의 덕산사(德山祠)에 모셔져 있던 박상(朴祥)과 박순(朴淳)을 이향(移享)하였으며, 1673년에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을 추가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그 뒤 전라남도유림에 의하여 1938년 5칸의 빙월당(氷月堂)이 건립되었으며, 1972년에 4칸의 고직사(庫直舍), 1978년에 외삼문(外三門)과 3칸의 장판각(藏板閣), 1980년에 사우(祠宇), 1981년에 내삼문이 건립되었다. 빙월당은 광주광역시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장판각에는『고봉집(高峯集)』 목판 474판이 보관되어 있다.

 빙월당은 서원의 강학당이다. 빙월은 '밝은 달과 투명한 얼음과 같은 청렴한 마음'이라는 뜻으로 정조가 이름을 지어 내렸다.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로 지정되었다.

 

 

 

 

 

 

2010년 월봉서원